국군간호사관학교

 

 

창군에서 본교설립까지 간호장교 양성

간호장교

현재의 국군간호사관학교가 존립하기까지의 간호장교 양성은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간호장교단의 창설 : 1948.8.26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자주국방』이야말로 국가보존의 절대적 요소라는 민족적 각성을 통해 미 군정기간 동안 군 조직의 명칭변화와 운영상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국군이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국군이 자주국방이라는 거대한 목표 아래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의무부서도 1946년 6월 14일에 통위부(현 국방부) 내에 의무국의 설치를 효시로 1948년 5월 1일에는 군내 최초의 병원인 제1육군병원이 설립되어 군의관과 의무병으로 편성된 의무요원으로 진료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제1육군병원의 설립 이후 중환자 간호 및 병실관리에서부터 물품관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어 이를 책임 있게 관리할 전문 간호 인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계속적인 육군병원의 창설을 고려하고 있던 초대 의무감(신학진 대위)과 2대 의무감(박동균 소령)은 군병원에 필요한 전문 간호 인력의 선발이 절실함을 인식하고, 미 8군 간호고문단의 조언을 구하여 면허간호사를 간호장교로 임관시키는 간호장교 후보생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간호장교단 창설에 관한 제반 여건조성에 주력하였다. 또한, 우수한 간호장교를 모집하기 위해 직접 보건국 간호사업과와 대한 간호협회를 방문하여 협조를 요청하였고, 민간 종합병원 간호과장을 통한 직접 홍보에 주력하여 여성의 군 입대에 비호의적이었던 당시 사회적 여건과 인식에도 불구하고 150여명의 간호사가 지원하여 신체검사와 면접을 통해 최종 31명이 선발, 1948년 8월 26일 소위로 임관함으로써 육군 간호장교단이 창설되었다.
간호장교 후보생 1기 간호장교의 임관은 대한민국에서 첫 여성군인의 탄생이자 여성장교로서의 첫 임관이었기에 의무부대는 물론, 사회 각계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으며, 간호장교단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6.25전쟁 이전에 배출된 간호장교 후보생 1기부터 5기에 이르는 총 120명의 간호장교들은 여수. 순천 10.19사건 및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서의 응급처치와 환자간호는 물론, 한국 전쟁 시 전상환자 간호로 국가위난 극복의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군의학교 간호사관생도 교육과정 설치 : 1951.1.6

 

6.25전쟁이 발발한 전쟁초기에는 5개의 육군병원과 1개의 정양병원만이 있었으나, 전쟁 중 매 해 평균 10개의 육군병원과 2개의 정양병원이 증편되었고, 환자의 수용능력도 전쟁발발 당시 8,560병상이던 것이 1953년 휴전 당시 43,500병상으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일평균 22,800명의 장병이 입원하는 상태에서 대량 전상자의 간호업무 요구는 증대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전쟁 발발로 인하여 간호인력 요구가 증대되자 기존 인력의 퇴역을 억제하면서 모집을 계속하여 간호장교 후보생 6기부터 11기 간호장교의 임관으로 총 257명이 충원되었으나, 간호 인력의 절대부족은 점차 심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간호장교 후보생제도를 인력획득 방안으로 채택하였던 간호병과는 이러한 간호 인력의 절대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재 개교된 군의학교 내에 1951년 1월 6일, 간호사관생도 교육과정(2년)을 신설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이 바로 오늘날 국군 간호사관학교의 모태로서 학교역사의 효시가 되었다. 1기는 6.25전쟁 발발과 1.4 후퇴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전시 간호 후보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통해 서울 돈화문(비원)에 집결한 수백 명의 서울 지역 학생을 대구 제1육군병원(경북의대 강당)으로 이송하여 1950년 12월 24일에 필기시험과 신체검사를 통해 303명을 선발하였다.
선발된 1기 생도들은 1951년 1월 1일부터 부산 대신동에 있던 여자 의용군 훈련소에서 1개월간의 기초 제식훈련과정을 수료하고, 부산에 있던 제3, 5육군병원과 마산에 있던 제2육군병원, 수도 육군병원으로 분산 배속되어 1개월을 지낸 후, 1951년 3월 7일, 244명이 우선 입교하였고, 전상자 간호의 부족한 일손을 지원하기 위해 육군병원에 잔류하고 있던 59명이 동년 6월 11일, 입교하였다. 2기는 당시 부산 동래에 있던 육군 군의학교(1952년 9월 27일에 마산으로 이전함)에서 피난 내려와 있던 전국의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집, 선발하여 1952년 5월 12일, 134명이 입교하였다. 또한, 3기는 부산 동래에서 보다 안정된 주둔지인 마산으로 이전한 육군 군의학교에서 1953년 4월 13일, 90명이 입교하였는데, 비록 휴전은 이루어졌지만, 전상자 간호 인력소요는 여전히 증대되었다.
한편, 휴전으로 인해 대부분 귀향이 이루어진 1954년에는 마산지역에서 모집인원의 확보가 어려워 세 차례에 걸쳐서 모집이 이루어졌는데, 1954년 1월 18일에는 47명이 5기로 입교하였고, 동년 5월 26일에는 33명이 6기로 입교하였으며, 동년 12월 13일에는 27명이 7기로 입교하게 되었다. ( 간호 사관생도과정 4기는 없음 : 『국군 군의학교 50년사』에 의하면 전시 군의학교 내에 설치되었던 교육과정 중에 군의장교 후보생과정이었던 군의 초등군사반 과정도 4기가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
그 후, 휴전과 함께 사회가 안정되면서 지원자가 격감하게 되어 1955년 11월 28일에 8기 30명, 1956년 7월 16일에 9기 46명, 1957년 4월 23일에 10기 38명의 입교를 마지막으로 군의학교 간호사관생도 모집은 중단되게 되었다.

간호위탁생 제도 : 1955.4~1956.4

 

휴전 후 사회가 안정되어 감에 따라 간호장교의 전역은 증가하는 반면, 군의학교 내의 간호사관 생도와 간호후보생 지원률은 현저히 감소되어 인력확충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의 대안으로 보건사회부의 국고보조금 지원에 의해 위탁생 제도를 도입하게 되어 1955년 4월 1일 전국의 주요 10개 간호 고등 기술고등학교(서울 의대, 적십자, 교통, 시립, 경북의대, 진주도립, 대전도립, 광주의대, 개정, 전주도립)에 군 장학생 335명의 위탁교육을 실시하게 되었으며, 이들은 각 학교에서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 간호사로서 그 중 249명이 간호장교 후보생과정을 필한 후에 1958년 5월 3일 간호장교로 임관하게 되었다. 1956년 4월 1일에는 시립, 진주도립, 광주의대의 3개교를 제외하고, 성 요셉, 연세 의대, 서울 여의대, 동산의 4개교가 추가되어 총 11개교 253명이 입학하여 1959년 5월 9일 195명이 임관하였으나, 이러한 간호위탁생 제도도 민간학교의 시설 및 교수 부족으로 2회를 끝으로 폐지되었다.

육군병원 부설 간호학교 설치 : 1957.4~1960.4

 

각 민간 간호학교의 시설 및 교수 부족으로 군 위탁생 교육이 불가능하게 되자 군 자체적인 간호 인력의 양성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이에 1957년 4월 1일 전국의 5개 육군병원( 수도, 제 1, 3, 63, 98육군병원)에 부설 간호학교(3년제)를 설치하여 간호사관생도 교육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교육과정도 3개 기수의 교육이 진행되고 있던 1959년 9월에 학교 설치법안이 국무회의 심의에서 부결되어 1960년 4월 11일 국특 202호(1960년 5월 30일부)에 의거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3년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1기는 1960년 3월 29일 보사부 시행 간호사 검정고시에 응시하여 187명 중 163명이 합격하였으며, 이 중 간호장교로 임관하기를 자원한 131명이 2개월간의 군사훈련을 마친 후 동년 9월 3일에 간호 후보생 제 15기로 임관하였다. 부설1기로 졸업하고, 간호후보 15기로 임관한 졸업생의 경우는 대통령령 제 5470호(1970.12.31)에 의거하여 국군 간호사관학교 졸업자로 자격을 인정하며, 졸업생의 학적도 국군 간호사관학교에서 보관, 유지하고 있다.
반면 1958년과 1959년에 육군병원 부설 간호학교에 입교한 생도는 국특 제202호에 의거하여 당시 각각 1학년과 2학년으로 민간 간호교육기관에 위탁되었는데,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부설 2기 205명은 5개의 민간 간호학교 (교통병원 간호학교, 경북의대 간호학교, 부산의대 간호학교, 대전 도립간호학교, 개정병원 간호학교)로,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부설 3기 91명은 3개의 민간 간호학교(적십자 간호학교, 수도간호학교, 경북간호학교)로 위탁되었다.
민간 간호학교로 위탁된 부설 2기, 3기는 해당 학교에서 3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2개월의 군사훈련을 마친 후 간호 후보생 제 16기(171명)와 제17기(71명)로 임관하였고, 이들은 1962년 1월 문교부령 제 676호에 의거한 민간 간호학교 승격지침에 따라 졸업 시에 위탁 해당학교의 졸업자격을 인정받게 되었다.

육군간호학교설립 : 1967.8.15

 

1960년대 군 간호인력 충원은 군 자체의 일관된 양성제도가 마련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국, 서독 등 민간 간호사들의 해외취업률이 높아지면서 간호후보생의 획득이 어려워졌으며 월남전 파병으로 연 100여명 정도의 간호장교가 파월되고, 파월 부상용사의 귀국으로 이들의 간호를 담당 할 간호장교의 수요도 더욱 증가되어 간호병과에서는 심각한 인력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월남전 부상 장병들의 간호를 위한 임시방편으로 1966년 8월 20일 90명의 간호조무사를 채용하여 각 육군병원에서 간호업무를 보조하게 하고, 1966년 4월 16일 을종위탁생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간호장교 인력난을 해결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궁극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군 간호업무를 일관성 있게 장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질적인 간호장교 수급방안이 요구되어 당시 간호병과장이던 소 숙정 대령을 중심으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67년 8월 15일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육군간호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육군간호학교령(대통령령 제3236호 '67. 10. 12)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육군간호학교는 국군조직법에 의하여 설립되고 교육법에 의거하여 민간 간호교육기관과 동일한 교육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군 조직법에 의해 설립된 학교라는 이유로 졸업후 학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69년 5월 1일 보건사회부로부터 정규 간호사를 배출시킬 수 있는 간호교육기관으로 지정을 받았으며, 1970년 9월 9일에는 문교부에서 100명 정원의 교직과정 설치 승인을 받아 졸업자에게 초,중등 보건교사 자격을 부여하게 되었다. 동년 12월에 의무부대 통합 운영방침에 따라 육군병원 및 육군간호학교가 육군참모총장 예하부대에서 국방부 직할부대로 지휘감독권이 이양되어 교명도 국군간호학교로 개칭되었다.

국군간호학교

 

국군간호학교

197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간호교육기관은 간호고등기술학교(3년제), 간호학교( 3년제), 간호전문학교(3년제), 간호대학 및 간호학교(4년제) 등으로 다양한 학제를 가지고 운영되었다. 이처럼 분산되어 있던 간호교육기관을 통폐합하는 문교부 교육기관 정비계획에 의해 국군간호학교는 1974년 3월 전문학교 교과과정으로 개편되었고 1975년 12월부터는 전문학교 학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1979년도부터 교육법상 전문학교가 전문대학으로 학제가 개편되면서 본교도 간호전문대학과정으로 변경되었고 교육법상 간호학교라는 명칭이 없어짐에 따라 생도 교육 기관에 맞는 명칭이 요구되어 1980년 1월 4일 법률 제 3247호에 의거 국군간호사관학교로 교명이 개정되고 졸업시 전문대학 졸업 학력이 인정되었다. 국군장병에게 양질의 전인간호를 제공함으로써 간호장교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간호교육기관이 4년제 대학으로 개편되는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국군간호사관학교도 3년제 전문대학 과정에서 4년제 정규 간호대학으로 학제를 개편하였고(법률 제 3267호, 1980.12.4),학교의 기구도 그 기능이 확대되었다.

자운대 이전

 

1980년 중반부터 학교당국이 구상해오던 학교 확장계획이 의무부대 현대화 사업에 반영되어 1994년 5월 1일 대전시 유성구 자운동에서 역사적인 사관학교 신축교사 기공식을 가졌다. 1996년 11월 26일 준공식이 거행될 때까지 2년 6개월 동안 97억원이 투입 되었으며 총 부지 429,754㎡ (전용면적 62,810.2㎡) 에 23,471.18㎡ 규모의 신축교사를 갖추게 되었다.
지난 1999년 학교는 국방부 예산 절감 차원에서 국방부 산하 군 교육기관 통폐합 및 규모 축소가 논의되면서 2000년, 2001년 2년간 신입생 선발을 하지 못하여 존폐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당시 현역 및 예비역 간호장교와 여성계의 다각적인 노력으로 2001년 5월 31일 학교 존치가 결정되고 한국군 최초 여성장군인 양승숙 준장이 2002년 1월 23일 학교장으로 취임하면서 장관급 지휘관 체제로 전환됨은 물론 정상적인 학교 발전을 위한 학교 편제개편 및 제도개선 등의 활발한 사업 추진으로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편 학교 발전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3년 4월 26일 재단법인 국군간호사관학교 발전기금이 정식 발족되어 생도교육 및 학교발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오고 있으며, 2004년 12월에는 쾌적한 생도 생활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생도대 건물 한개동(4층)과 본부중대 병사들의 복지향상을 위한 본부중대 막사를 신축하였다.
학교 숙원사업이던 생도회관 신축은 2007년에 시작되어 2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09년 11월 준공되었으며, 생도 동아리 활동실과 소강당, 체력단련장, 시뮬레이션 교육이 가능한 간호학 실습실, 역사관등이 갖추어져 효율적 학습은 물론 다양한 특별활동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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